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드리안 벨트레 (문단 편집)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파일:external/www.posters.ws/adrian_beltre_2004_studio_portrait_photofile.jpg]] 벨태현이라 불리던 시절. 다저스 도미니카 스카우팅 조직의 눈에 띄어 1994년 자유계약을 통해 2만 3천불의 계약금을 받으며 다저스에 입단하였다. 그런데 계약 당시에는 1978년 4월 7일생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1999년 언론을 통해 알려진바에 따르면 실제 생년이 1년 늦은 1979년인 게 드러났다. 즉 계약 당시 실제 나이는 15세였다는 것. 메이저리그에서 프로계약이 가능한 최저 연령은 만 16세였기 때문에 다저스는 이를 어긴 댓가로 도미니카에서의 스카우팅 활동을 1년간 정지하는 징계를 받았다. 벨트레는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원래 행정체계가 허술해서 자기 나이를 속이는 일이 많은 도미니카 선수들중 거의 유일하게 '''나이를 늘려서 썼다가 걸린 케이스'''이다. 보통은 동일한 실력이라면 어린 나이일수록 장래성을 인정받고 유망주 대접을 받기에 나이를 원래보다 적게 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훌리오 프랑코]] 등의 사례가 대표적.] 1996년부터 다저스 산하 정규 마이너리그팀에 소속되어 프로생활을 시작하였고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 발표하는 유망주 랭킹에서 1997년에 30위, 1998년에 3위에[* 2위도 당시 다저스 소속이던 [[폴 코너코]]였다.] 올랐을 정도로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주였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톱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 실제 마이너 데뷔한 1996년과 97년에 20개 이상의 [[홈런]]에 90개 이상의 타점을 기록할 정도로 타격능력 하나는 뛰어났다. 그리고 1998년 6월에 메이저로 승격되었다. 첫 타석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애너하임 에인절스]]와의 인터리그였으며 첫 타석에서 동점을 만드는 2타점 적시타를 때리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kakaotv(393030086)] 1998년 다저스의 3루를 지키던 토드 질이 5:2 트레이드로 [[플로리다 말린스]]로 이적, 질을 대체할 선수로 영입된 [[바비 보니야]][*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원조 킬러B의 일원이었던 선수.]가 폭망하면서 생긴 그 빈 자리를 완전히 차지하고, 이내 주전으로 자리잡아 매시즌 0.260을 전후한 타율에 평균 10개 후반의 홈런 개수를 기록했다. 물론 마이너 시절 기대치에 비하면 좀 못 미치기는 했지만. 겨우 19살에 첫 풀타임을 소화한 유망주라는 관점에서 보면 무난한 성적이었고 포텐셜이 폭발하면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당시 다저스는 [[게리 셰필드]]-[[숀 그린]]-[[에릭 캐로스]] 등이 중심타선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바람에 자리를 못 얻은 코너코가 트레이드되기도 했고.] 벨트레가 그 뒤에서 성장하도록 기다려 줄 여유도 충분히 있었다. 문제는 시즌이 계속 지나가도 그 포텐셜 폭발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수비도 돌글러브라 조롱받을 정도로 막장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핫코너 수비수 치고는 썩 좋지는 않은 편이었다.[* 다만 03년부터는 수비력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레퍼런스 기준 03년 dWAR 2.8, 04년 dWAR 2.5를 기록.] 그 때문에 만년 유망주란 타이틀을 꼬리표처럼 달고 있었다. 특히 마이너시절과 데뷔 초 두시즌에는 그럭저럭 볼넷을 고를 줄 아는 타자였는데 점차 볼넷 개수가 줄어든 퇴행효과까지 보여서 더욱 욕을 먹었다. 그래도 수비는 점점 늘어서 다저스 말년에는 골글급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2004년 갑자기 사람이 달라졌다! 2004년 시즌 타율 0.334, 48홈런[* 2004년 벨트레와 1980년 [[마이크 슈미트]]가 친 48홈런은 2019년 [[신시내티 레즈]]의 [[에우제니오 수아레스]]가 49홈런으로 경신하기 전까지 내셔널리그 3루수 단일시즌 최다홈런 기록이었다.] 121타점, 200안타에 [[OPS]]만 1.017을[* 1980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ab&no=3430208&page=3|#]]] 기록했으며 실버 슬러거와 [[MLB MVP]] 2위[* 참고로 1위가 [[배리 본즈]]에 3위가 [[알버트 푸홀스]]였다.]에 올랐을 정도로 몬스터 시즌을 보냈고 모든 타격지표에서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였으며 리그 최정상급 타자의 포스를 보여주었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사실 이 시즌 벨트레는 부상 중이었다. 시즌 초반 자신의 타구에 왼발목을 맞아서 발목에 뼛조각이 생길 정도의 부상을 당했음에도 벨트레는 치료를 거부하고 뛰었다. 그런데, 타격시 왼발 통증때문에 타석에서의 집중력이 전에 없이 올라갔고, 스윙때 생기는 통증때문에 스윙시도를 줄인 것이 선구안의 회복으로 이어졌고 거기다 타격정확도가 급상승해 원래 가지고 있던 재능까지 폭발하면서 리그를 초토화시켰다. 심지어 부상을 안고 뛰었는데도 절륜한 수비력을 자랑했는데, 세이버 스탯으로 돌아보면 이 해 골드 글러브 수상자였던 [[스캇 롤렌]]보다 UZR이 높았다.[* 세부 스탯을 파고들면 발목 부상의 여파인지 수비 범위에서는 점수가 전년도에 비해 다소 줄었으나, 범위가 줄어든 반동인지 수비 안정감이 늘어나서--예?-- 실책이 급감한 덕에 수비 범위 축소를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로 점수가 좋아졌다. 덕분에 UZR이 상당히 높게 나온 반면, DRS은 롤렌보다 다소 낮았다.] 언젠가 벨트레가 터지기를 기대했던 팬들은 환호하였으나 당시 벨트레는 FA시즌을 앞두고 있었기에 [[FA로이드]] 효과를 의심하는 팬들도 여럿 있었다. 결국 여러 논란 속에서 다저스는 벨트레의 성적을 FA로이드로 판단한 듯 FA로 풀린 벨트레를 잡지 않았다. 그리고 [[시애틀 매리너스]]의 단장 [[빌 버베이시]]는 얼씨구나 하면서 FA 시장에 나온 벨트레에게 5년간 6400만 달러라는 거액 계약을 선사하면서 세이프코 필드로 데려갔다. 당시까지만 해도 다저스가 아까운 타자를 놓쳤다는 중론이었고 그렇게 2005년 시즌이 다가왔으나….[* 벨트레 이적 이후 다저스는 3루수에 2014년 [[저스틴 터너]] 등장 전까지 마이크 에드워즈 & 호세 발렌틴 - 윌슨 베테미 - [[노마 가르시아파라]] - 블레이크 드윗 - 케이시 블레이크 - [[후안 유리베|후안 우리베]] - [[루이스 크루즈]]로 돌려막기를 해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